나의 해방일지는 비교적 깊이가 있는 드라마에 속합니다. 그러다 보니 리뷰 포스팅이 길어져 2번째 리뷰를 이어서 올립니다. 첫 번째 리뷰(링크 클릭) 포스팅에서는 간략한 등장인물 소개와 무엇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해방될 수 있는지에 대한 내용을 올렸습니다. 이번 리뷰에서는 결말 해석에 해당하는 '그들은 무엇으로부터 해방되었나'에 대한 저의 생각을 담았습니다. 그리고 이 드라마의 작가에 대한 간략한 소개글도 함께 실었습니다.
그럼, 나의 해방일지 의 두 번째 드라마 리뷰 시작합니다.
그들은 무엇으로부터 해방되었나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는 다른 드라마들과는 달리 모든 인물들의 명확한 결론을 내려주지는 않습니다. 진행의 많은 내용이 주인공들의 사랑 이야기임에도 그 흔한 결혼식 장면 한번 등장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드라마의 결말과 등장인물들이 어떤 해방을 이루었는지에 대해서는 각자가 해석하기 나름입니다.
아래는 제가 생각하는 등장인물들의 해방을 서술해 본 것에 불과합니다. 개인의 의견으로 참고하셔서 각자의 감상과 비교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1. 어머니의 해방
산포 가족 각자의 해방은 예상치 못하게 그들의 어머니로부터 시작됩니다. 어머니인 곽혜숙 여사(이경성 분)는 매일 다섯 식구와 구씨의 세끼 밥과 새참까지 챙기고, 일 욕심 많은 남편의 싱크대 사업과 밭일까지 도와야 합니다. 가족들 중 가장 힘겹고 고된 삶을 사는 인물입니다.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기정의 말에 엄마는 둘의 약속 장소인 식당을 찾아갑니다. 그리고는 기정의 만류에도 기쁜 마음을 참지 못하고 그들 앞에 나타나 아는 체를 합니다. 기어이 밥값까지 계산하고 나간 엄마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합니다. 그 길로 시장에 들른 엄마에게 시장 상인이 말합니다. 어느 날 미정이가 강아지를 잃어버렸다고 펑펑 울면서 지나가더라고.
감정표현을 하는 법이 없던 딸이 구씨가 떠나고 혼자 슬픔을 견뎠을 생각을 하니 엄마의 마음은 금새 무너집니다. 회사를 그만 두었다는 큰아들의 걱정도 밀려 옵니다. 슬픔에 잠겨 방에서 혼자 잠이 든 엄마는 그 와중에도 가족들을 위해 올려둔 밥솥의 가스불을 제 때 끄지 못하고 맙니다. 엄마는 죽음으로 고된 삶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어머니의 죽음 이후, 아버지는 재혼을 하고 삼 남매는 서울에 집을 얻어 산포시를 떠납니다.
2. 창희의 해방
창희는 정말 어느 날 갑자기 그래야만 할 것 같아서 회사를 그만둡니다. 덕분에 일찍 집에 귀가하여 어머니의 마지막 순간을 창희가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어릴 적에도 그랬습니다. 그냥 갑자기 집에 돌아갔던 어린 창희는, 할머니의 임종을 홀로 지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창희는 준비한 사업 아이템으로 대형 거래를 따낼 기회를 얻었습니다. 계약을 하러 가던 창희는, 문득 오랜 투병 생활을 하고 있는 아는 형의 병실에 잠시 들러 인사만 하고 가기로 합니다. 아무도 없는 병실에서 창희는 그가 생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했음을 직감합니다. 창희는 계약에 실패하면 큰 손해를 입을 것을 알고 있지만, 차마 외면하지 못하고 형의 마지막을 함께 합니다.
형, 내가 세 명 보내봐서 아는데, 갈 때 엄청 편해진다. 얼굴들이 그래.
그러니까 형, 겁먹지 말고 편하게 가, 편하게.
창희는 이것이 자신의 운명인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친구이자 연인이던 지현아(전혜진 분)와의 길고 지난했던 관계를 정리하고, 차와 서울살이와 같은 자신의 욕망도 정리합니다. 창희는 젊은 시절 내내 힘들게 끌려다녔던 연애감정과 물질적 욕망으로부터 해방되려 합니다. 창희는 운명을 받아들이고 '장례지도사'의 길을 걷습니다.
3. 기정의 해방
기정은 태훈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기정은 태훈과 결혼하여 드디어 가정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비록 태훈에게 사춘기 딸과 태훈 부녀만 바라보고 사는 시누이가 둘이나 있었지만 그것마저 괜찮았습니다. 그러나 3년이 지난 지금도 기정은 미혼입니다. 어느 날 기정이 임신을 했다고 오해한 태훈에게 기정이 아니라고 해명하자 태훈은 '다행이다' 라고 말합니다.
기정은 태훈이 자신과 결혼할 생각이 없음을 깨닫고 이별을 해야 할지 고민합니다. 그런 기정에게 태훈은 아이가 태어나는 것 자체가 자신에게는 슬픈 일이라서 그랬던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기정은 이미 딸과 두 명의 누나라는 가족의 짐을 짊어진 태훈에게 또 하나의 짐이 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마침내 기정은 오랜 시간 미련을 두었고 스스로를 압박해 왔던 결혼과 가족이라는 굴레에서 해방됩니다.
전 이상하게 아장아장 걷는 애들 뒷모습을 보면 마음이 안 좋아요.
'30년 후엔 쟨 어떤 짐을 지고 살아갈까?'
물론 유림이가 있어서 좋았고 내 인생에 유림이가 없다는 건 상상도 못 하지만
'난 태어나서 좋았니?'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아니요.
그래서 기정씨가 아이 가진 게 아니라고 했을 때, 불쑥 다행이란 말이 튀어나온 것 같아요.
- 태훈의 대사 中
4. 미정의 해방
미정과 구씨는 다시 만납니다. 그리고 전보다 더 각자의 마음에 솔직해 지기로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 자체만으로 미정이 해방되었다고 해석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찌 보면 미정은 삼 남매 중 가장 적극적으로 해방을 꿈꾸었던 인물입니다. 해방을 선언하고 문제점을 짚어나가기 시작했을 때부터 미정을 이미 조금씩 해방에 가까워지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구씨에게 자신을 추앙하라고 당당히 요구하던 미정을 구씨로부터 추앙을 받아냈습니다. 그리고 자신 역시도 구씨를 진심으로 추앙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미정은 자신을 한없이 초라하게 만들고도 오히려 당당했던 전 남자친구 앞에서 더는 약한 사람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미정은 그 사람을 용서하기에 이르릅니다.
그렇기에 미정은 구씨에게 다른 사람을 '환대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미웠던 사람을 환대해 주기 위해서는 용서와 관용의 마음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타인에 대한 용서와 관용은 자기 자신을 사랑할 때 진정으로 실행이 가능합니다. 미정은 자기 자신을 사랑함으로써 스스로 가둬 두었던 내면으로부터 해방된 것입니다.
나 미쳤나 봐. 내가 너무 사랑스러워.
마음에 사랑밖에 없어. 그래서 느낄 게 사랑밖에 없어.
5. 구 씨의 해방
자경은 조직에 몸담아 거칠게 살아왔던 인물입니다. 목적한 바가 있으면 물불 가리지 않고 폭력을 행사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자경에게는 함께 살던 연인이 있었고 그녀는 조직과 연관된 백사장의 동생이었습니다. 우울증이 있던 연인으로 인해 자경 역시 힘든 시간을 보내던 와중에, 자경은 그녀에게 병원에 가서 상담을 받아 보는 것도 방법이라고 조언을 합니다. 그의 연인은 스스로 생을 마감합니다.
자경은 죄책감과 충격으로 서울을 떠납니다. 백사장은 자경이 동생을 죽인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는 지인을 통해 입수한 자경의 최종 목적지에서 자경을 기다립니다. 그런데 자경은 그 장소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미정의 목소리에 이끌려 당미역에서 잘못 내렸기 때문입니다.
산포에서 미정을 추앙하다가 다시 조직으로 돌아 간 구 씨는 여전히 능력있고 잔인한 구자경으로 지냅니다. 여전히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자신이 해친 사람들이 나타나 정신을 차릴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무언가 조금 달라졌습니다. 자꾸만 염미정이 생각납니다. 구씨는 이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추앙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미정을 다시 만난 구씨는 이제 미정에게 기꺼이 자신의 이름을 말해줄 수 있습니다. 미정을 향해 미소를 지을 수도 있습니다. 마침내는 돈 때문에 자신을 배신하고 도망치려던 형을 향해 죽지 말고 살라고 환대해 주겠다고 말해 줄 수 있습니다. 구자경은 타인을 추앙하고 용서함으로써 자신에 대한 미움으로부터 조금씩 해방되고 있습니다.
박해영 작가
나의 해방일지의 박해영 작가님의 또 다른 대표작은 드라마 올드 미스 다이어리, 또 오해영, 나의 아저씨(링크) 등이 있습니다. 올드 미스 다이어리에서 나의 아저씨로 올 수록 분위기가 조금씩 어두워지는 느낌이 있다고 보입니다. 박해영 작가님 드라마의 특징은 무엇보다 과하지 않은 감정에서 느껴지는 서정적이고 공감 가는 대사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문득 발견한 또 하나의 특징은 나의 해방일지까지 포함하여 언급한 네 개의 작품에는 모두 결혼을 원했으나 하지 못한 여성 캐릭터가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올드미스 다이어리는 말할 것도 없고, 또 오해영에서는 주인공 두 해영이가 모두 일단 결혼에 실패한 적 있는 인물들입니다. 나의 아저씨에서는 오나라씨가 열연한 정희 역할이, 나의 해방일지에서는 염기정 역할이 있습니다.
또 오해영과 나의 아저씨는 인생 드라마로 뽑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도 두 드라마 모두 재미있게 봤습니다. 특히 나의 아저씨는 나의 해방일지 못지않게 담담하면서도 위로를 전했던 드라마입니다. 나의 아저씨 역시 밝은 드라마는 아니지만, 나의 해방일지보다 무게가 조금은 덜 느껴지는 힐링 드라마 입니다.이미 포스팅해 둔 리뷰가 있어서 긴 설명 대신 링크로 대신 합니다.
서울에서 산포 가는 길만큼 긴 포스팅이었습니다. 혹시 글을 다 읽으시는 분이 계시거나 부분적으로만 읽으셨던 분들이라도, 중간중간 던졌던 질문들에 대해 아주 잠시라도 좋으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되셨다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의 해방을 기원하며 나의 해방일지 드라마 리뷰를 마칩니다.
+나의 해방일지의 박해영 작가의 또 다른 작품 _ 나의 아저씨 드라마 리뷰
[드라마 리뷰] 나의 아저씨 _ 인생 힐링 드라마, 좋은 어른 이란 누구인가
나의 아저씨는 좋은 어른이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드라마 입니다. 삶은 누구에게나 쉽지 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때문에 삶이 힘겨워서 좋은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어쩌면
iknowuwill.com
+나의 해방일지 _ 첫번째 리뷰
[드라마 리뷰] 나의 해방일지 (1) _ 해방 추앙 환대, 그리고 손석구 씨
나의 해방일지는 정체는 모르겠지만 삶의 무언가로부터 해방되고 싶은 삼 남매와 외지인 구 씨의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입니다. 경기도 끝자락인 산포시에서 서울로 출퇴근 시간만 4시간을 소
iknowuwill.com
'드라마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드라마 리뷰]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2)_명장명 Best 3, 숨겨진 결말, 광종의 진실 (0) | 2022.08.28 |
---|---|
[드라마 리뷰]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1)_역주행 열풍, 후유증 주의 이준기 아이유 (0) | 2022.08.27 |
[드라마 리뷰] 나의 해방일지 (1) _ 해방 추앙 환대, 그리고 손석구 씨 (0) | 2022.08.22 |
[드라마 리뷰] 개미가 타고 있어요 _ 떡상 기원 드라마, 개미 투자자들은 조용히 이 글을 누릅니다 (0) | 2022.08.21 |
[드라마 리뷰] 멜로가 체질 _ 알고보니 스타양성 드라마, 대놓고 웃긴 B급 감성 코믹 체질 (0) | 2022.08.20 |
댓글